수출바우처로 홍보영상을 제작하면서 자주 나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예산이면 영상을 몇 편 받을 수 있나요?"
정산 규정을 먼저 확인해야 답이 나오는 질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규정을 찾아보면 답이 아예 적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이 질문의 진짜 답을 결정합니다.
결론부터 말합니다. 정산가이드는 금액과 증빙을 규정하지, 결과물이 몇 편인지는 규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 편을 받는 것은 규정이 막은 일도 아니고 규정이 보장한 일도 아닙니다. 계약 전에 어디까지 협의됐는지를 봐야 합니다.
규정에 없다는 것은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정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의 촬영과 하나의 구성에서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은 본편 하나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참조영상링크
1. 정산가이드가 실제로 규정하는 것
수출바우처 공식 홈페이지가 배포하는 정산가이드에서 홍보동영상 항목을 찾아보면, 규정하고 있는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규정하는 것
내용
지원 대상
제품의 외국어 홍보 등을 위한 홍보동영상 제작 비용. 한국어 제작 비용은 지원 대상이 아님
증빙 서류
세금계산서 또는 인보이스, 입금증 또는 카드매출전표, 완료 동영상 증빙자료를 첨부한 결과보고서, 표준계약서
검수 절차
정산 신청 전 총괄수행기관의 검수. 정산기준과 권장표준단가는 총괄수행기관이 별도 공지
여기서 확인해야 할 것은 목록에 없는 항목입니다. 결과물을 몇 편 만들어야 한다거나, 몇 편까지 인정한다거나, 여러 편을 만들면 어떻게 처리한다는 조항이 나오지 않습니다.
정산의 단위는 편수가 아니라 서비스 1건입니다. 하나의 과업으로 계약하고, 그 계약에 대해 증빙을 제출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영상을 여러 언어로 만들어도 서비스 이용 건수로는 하나로 처리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수출바우처는 사업과 소관기관에 따라 세부 기준이 다르므로, 실제 판단은 참여 중인 사업의 공식 정산가이드와 담당기관 안내를 우선하셔야 합니다. 공개 상태, 외국어 비중, 직접비 증빙 같은 세부 점검 항목은 수출바우처 홍보동영상 정산 기준에 따로 정리돼 있습니다.
같은 해에 수출바우처와 중소기업혁신바우처를 함께 쓰는 회사라면 따져 볼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두 사업에서 영상을 각각 만들 수는 있지만, 같은 결과물로 두 번 정산하면 부정수급이 됩니다. 제품과 주제를 어떻게 갈라야 하는지는 수출바우처와 혁신바우처, 같은 해에 영상을 두 편 만들 수 있을까에 정리돼 있습니다.
2.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편수를 세는 규정이 없다는 사실은 양쪽에 서로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참여기업 입장에서는 여러 편을 받아도 정산에서 유리해지지 않습니다. 다국어로 다섯 편을 만들어 제출해도 서비스 한 건입니다. 증빙 서류가 줄지도, 인정 금액이 늘지도 않습니다.
공급기업 입장에서는 여러 편을 만들 계약상 의무가 없습니다. 계약서에 본편 한 편이라고 적혀 있다면 한 편을 납품하는 것으로 과업이 완료됩니다. 여러 편으로 나눠 편집하는 작업은 추가 공수인데 정산에서 인정받지 못하므로, 그렇게 할 이유가 규정 안에는 없습니다.
즉 여러 편으로 나눠 받는 것은 규정의 영역이 아니라 서비스의 영역입니다.
구분
규정이 정하는 것
협의로 정해지는 것
지원 대상 언어
○
증빙 서류
○
검수 절차
○
결과물 편수
○
파생 버전(숏폼·요약본)
○
원본·프로젝트 파일 인계
○
오른쪽 칸은 아무도 정해 주지 않습니다. 계약 전에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대로 없는 것이 됩니다.
3. 왜 이것이 예산 활용에서 중요한가
같은 1,000만원을 집행해도 결과가 크게 갈리는 지점이 여기입니다.
한쪽은 5분짜리 본편 하나를 받습니다. 정산은 문제없이 끝납니다. 그리고 그 영상은 유튜브에 한 번 올라간 뒤 잘 쓰이지 않습니다. 5분을 끝까지 보는 사람이 많지 않고, 영업 메일에 붙이기에도 길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쪽은 같은 촬영과 같은 구성에서 본편과 함께 용도별로 나뉜 결과물을 받습니다. 정산은 똑같이 본편 하나로 처리됩니다. 서류상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사업이 끝난 뒤 회사에 남는 것이 다릅니다.
홈페이지 메인에 걸 짧은 버전
영업 미팅 후 보낼 2분 요약본
전시회 부스에서 반복 재생할 무음 루프
제품별로 잘라낸 개별 소개 컷
채용이나 IR 자료에 붙일 회사 소개 구간
이 결과물들은 새로 찍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촬영한 소재를 다르게 편집한 것입니다. 그래서 추가 촬영비가 들지 않습니다. 들어가는 것은 편집 공수이고, 그 공수를 어디까지 서비스로 넣을지가 제작사마다 다릅니다.
한 번의 촬영에서 나온 소재를 용도별로 다시 편집하면 추가 촬영 없이 결과물이 늘어납니다. 참조영상링크
4. 상담에서 확인할 네 가지
계약 전에 물어보면 되는 질문입니다. 견적서에는 대개 적혀 있지 않습니다.
본편 외에 어떤 버전이 납품에 포함되나요? — 숏폼, 요약본, 무음 버전, 언어별 버전 중 무엇이 들어가는지
다국어로 만들 경우 언어별 마스터를 각각 받을 수 있나요? — 자막 파일만인지, 자막이 삽입된 영상까지인지
사업 종료 후 수정이 필요하면 어떤 파일이 필요한가요? — 수정 가능한 원본이나 프로젝트 파일을 받아 둘 수 있는지
이 중 견적에 포함된 것과 별도 비용인 것을 나눠 주실 수 있나요? — 나중에 분쟁이 되지 않도록
규정이 편수를 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양쪽 모두에게 열려 있는 조건입니다. 적정한 범위에서 협의하면 대부분의 제작사가 응합니다. 같은 촬영에서 나오는 파생 버전 몇 개, 언어별 마스터, 숏폼 재가공 정도는 실무에서 흔히 조율되는 항목입니다.
문제는 이 여지를 정산 기준과 무관하게 계속 늘리는 요구로 쓸 때 생깁니다.
계약에 없던 버전을 납품 직전에 계속 추가하는 경우
과업 기간이 끝난 뒤 다음 해 수정까지 같은 계약으로 요구하는 경우
견적 대비 제작비를 과도하게 압박한 뒤 산출물은 그대로 요구하는 경우
공급기업도 참여기업과 같은 규모의 중소기업입니다. 국고보조금이 재원이라고 해서 공급기업이 대기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도 남는 것이 있어야 다음 프로젝트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작사는 한 해에 수십 개 회사를 만납니다. 어느 회사와 일했을 때 어땠는지는 업계 안에서 생각보다 빠르게 공유됩니다. 다음에 좋은 팀을 붙이기 어려워지는 결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좋은 영상 제작사를 계속 쓰는 회사들은 무엇이 다를까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요컨대 협의는 하되, 협의의 근거를 서로가 남길 수 있는 선에서 하는 것이 양쪽 모두에게 유리합니다.
6. 공급기업을 고를 때 실제로 봐야 할 신호
여러 곳에서 견적을 받다 보면 총액 비교에 시간을 다 쓰고 정작 포트폴리오를 못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물의 차이는 대부분 금액이 아니라 여기서 나옵니다.
신호
확인 방법
우리 사업을 이해하려 하는가
상담에서 제품이 무엇이고 누가 사는지 되묻는가, 아니면 사양과 납기만 확인하는가
용도를 물어보는가
이 영상을 어디에 쓸 것인지, 누가 볼 것인지 확인하는가
결과물을 나눠 제안하는가
본편 하나로 끝내려 하는가, 활용처별로 구성을 제안하는가
포트폴리오가 우리와 겹치는가
비슷한 업종·비슷한 목적의 작업이 실제로 있는가
못 하는 것을 말하는가
모든 요구에 가능하다고만 답하는가
마지막 항목이 의외로 중요합니다. "무조건 싸게"와 "무조건 다 해드립니다"는 서로 반대처럼 보이지만 같은 위험을 갖습니다. 둘 다 범위를 정하지 않은 채 계약으로 들어간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범위가 없으면 나중에 무엇이 빠졌는지 따질 근거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