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광고 스터디 15 — 잘 만든 광고 한 편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우리 기관·기업 영상에 가져올 기획 포인트를 찾습니다.
오래된 브랜드가 새 고객을 만나려 할 때 제작사에 가장 자주 오는 요청은 이것입니다. 젊고 트렌디하게 만들어 주세요. 그래서 젊은 모델을 세우고, 색을 밝게 바꾸고, 자막 속도를 올립니다. 그런데 완성본은 대개 어색합니다. 낡았다는 인식은 그대로 둔 채 겉면만 바꿨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브랜드의 영상은 젊어 보이는 방법을 찾기 전에, 그 인식을 덮을지 뒤집을지부터 정해야 합니다. 덮기로 하면 광고는 변명이 되고, 뒤집기로 하면 약점이 그대로 출발점이 됩니다.
국순당이 2024년 10월 공개한 백세주 어른찬가는 반대로 갔습니다. 이 광고는 백세주가 아저씨 술로 불린다는 사실을 한 번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아저씨를 이해하게 된 사람을 새 고객으로 세웁니다. 이번 글에서 볼 것은 캐릭터를 빌려 온 재치가 아니라, 약점을 지우지 않고 자산으로 바꾼 순서입니다.
백세주는 1992년에 나온 오래된 브랜드입니다. 제품 자체에 대한 불만보다 아버지가 드시던 술이라는 인식이 먼저 붙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브랜드가 흔히 택하는 길은 두 갈래입니다. 제품을 바꾸거나, 광고에서 젊은 척을 하거나.
국순당은 리뉴얼과 함께 캠페인을 냈고, 타깃을 25~39세로 잡았습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판단이 하나 나옵니다. 25~39세를 젊은 사람이 아니라 막 어른이 된 사람으로 정의한 것입니다. 정의를 바꾸는 순간 광고가 할 말이 달라집니다. 젊음을 파는 대신 어른이 되는 일을 이야기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성과는 뚜렷했습니다. 2025 유튜브 웍스 어워즈 코리아 그랑프리 선정 당시 공개된 자료 기준으로 브랜드 호감도가 24% 올랐고, 전년 대비 매출이 70% 늘었습니다. 이 캠페인은 서울영상광고제 2024 그랑프리(디지털), 한국광고학회 제32회 올해의 광고상 온라인·모바일 부문 대상도 함께 받았습니다.
새 문장을 만들지 않고, 이미 있던 문장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광고의 출발점은 광고회사가 만든 카피가 아닙니다. 인터넷에 이미 돌아다니던 한 문장입니다. 고길동을 이해하면 어른이 된 것이다.
아기공룡 둘리에서 고길동은 어린 시절에는 둘리를 괴롭히는 어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청자가 나이를 먹고 다시 보면, 남의 집에 얹혀사는 공룡을 먹여 살리며 회사를 다니던 가장이 보입니다. 이 뒤집힘을 사람들이 먼저 발견했고, 농담처럼 공유해 왔습니다.
광고는 그 문장을 자막으로 그대로 선언하며 시작합니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때 / 우리는 어른이 된다. 시청자를 설득하지 않습니다. 이미 동의하고 있던 것을 화면에서 확인시켜 줄 뿐입니다.
TV 속 고길동을 보여주며 자막으로 명제를 먼저 선언하고, 곧이어 그 인물을 실사 사무실 의자에 앉힙니다. 각 화면 카드를 누르면 해당 타임코드의 공식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만화 속 인물을 실사 사무실 의자에 앉혔습니다
이 광고의 핵심 장치는 여기 있습니다. 도입부에서 고길동은 TV 화면 안에 있습니다. 주인공이 소파에 앉아 어릴 때 보던 만화를 다시 보는 구도입니다.
그런데 36초 지점부터 고길동이 화면 밖으로 나옵니다. 실사로 촬영된 사무실 한복판, 실제 직원들이 오가는 자리에 2D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앉아 모니터를 보고 키보드를 칩니다. 이후로도 그는 계속 실사 공간에 있습니다. 밤 번화가를 혼자 걷고, 술집 문턱을 넘고, 테이블에 혼자 앉습니다.
이 합성이 곧 주제문입니다. 어릴 때 화면 속에서 미워하던 사람이, 어른이 된 지금은 내 옆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 말로 설명하면 한 문장이지만, 화면으로 보여주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배울 것은 기법이 아니라 비유를 화면 구조로 옮긴 방식입니다. 우리 회사 영상에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문장으로만 있고 화면에는 없지 않은지. 자막으로 고객과 함께 성장합니다라고 쓰는 대신, 그 문장을 그림으로 만들면 무엇이 되는지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제품은 92초에 처음 화면에 놓입니다
144초짜리 영상에서 백세주 병이 처음 화면에 놓이는 것은 92초 지점입니다. 그것도 주인공이 아니라 고길동의 테이블 위에 조용히 놓인 상태입니다. 라벨이 정면으로 보이고 잔에 따르는 장면은 100초를 넘겨서야 나옵니다. 브랜드 로고는 마지막 몇 초에 한 번 붙습니다.
앞의 1분 반 동안 화면에 있는 것은 제품이 아니라 하루입니다. 야근하는 사무실, 혼자 걷는 밤거리, 문을 열고 들어간 술집. 술을 왜 마시는지를 먼저 다 보여준 다음에 술이 나옵니다.
제품이 나오기 전 1분 반 동안 화면에 있는 것은 어른의 하루입니다. 술은 그 하루가 끝난 자리에 놓입니다. 각 화면 카드를 누르면 해당 타임코드의 공식 영상으로 이동합니다.
구조를 더 보면 시작과 끝이 같은 장소입니다. 첫 장면에서 주인공은 거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다가 TV를 켭니다. 마지막에도 같은 소파, 같은 조명, 같은 방입니다. 달라진 것은 공간이 아니라 앉아 있는 사람의 상태입니다. 바뀐 것을 보여주려고 새 장소를 찾지 않고, 같은 장소를 두 번 쓴 것입니다.
설계 요소
이 광고의 선택
흔한 리뉴얼 광고
낡은 이미지
인정하고 의미를 바꿈
언급하지 않고 덮음
새 타깃 정의
막 어른이 된 사람
젊은 사람
메시지의 출처
이미 퍼져 있던 밈
새로 만든 슬로건
제품 등장 시점
144초 중 92초
도입부부터 반복 노출
앞 1분 반의 내용
고객의 하루
제품의 장점
변화의 표현
같은 장소를 처음과 끝에 배치
장소·모델을 전부 교체
브랜드 로고
마지막에 한 번
코너에 상시 노출
07편 Old Spice가 구매자를 바꿨다면, 백세주는 나이를 바꿨습니다
좋은 광고 스터디 07의 Old Spice는 남성용 제품 광고에서 말 거는 상대를 실제 구매자인 여성으로 바꿨습니다. 사용자와 구매 결정자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용한 판단입니다.
백세주는 상대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같은 상대에게 다른 나이의 자기 자신을 보여줬습니다. 25~39세에게 당신은 젊다가 아니라 당신은 이제 어른이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대개의 브랜드가 고객을 실제보다 젊게 불러 주려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반대 방향의 선택입니다.
좋은 광고 스터디 09의 배달의민족 명화 패러디와도 갈립니다. 배민은 익숙한 그림의 구도를 빌려 유머를 만들었습니다. 백세주가 빌린 것은 그림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미 내려 둔 해석입니다. 소재를 빌리는 일과 합의를 빌리는 일은 다릅니다.
우리 회사 영상이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는 한 가지로 갈립니다. 시청자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쓰는지, 새로 외우게 만드는지입니다. 회사 영상을 다시 만들 시점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회사 소개영상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신호에서 이어집니다.
그대로 따라 하기 전에 네 가지는 확인해야 합니다
캐릭터 사용권. 이 광고는 외부 지식재산을 정식으로 쓴 사례입니다. 유명 캐릭터를 쓰려면 사용 범위, 기간, 매체, 2차 활용까지 계약으로 정해야 하고 비용도 붙습니다. 다만 예산이 작다고 이 각도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핵심은 캐릭터가 아니라 시청자가 이미 공유하고 있는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업종에 따라 오래된 자사 제품, 옛 로고, 창업 초기 사진, 지역에서만 통하는 장면이 같은 역할을 합니다.
밈에는 수명이 있습니다. 이미 퍼진 해석을 쓰는 방식은 그 해석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통합니다. 반쯤 식은 유행어를 뒤늦게 얹으면 오히려 낡아 보입니다. 우리 고객층에서 지금 실제로 통하는 말인지를 기획 단계에서 확인해야 합니다.
제품을 늦게 내는 데는 조건이 있습니다. 92초까지 제품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앞이 지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앞부분이 약한 상태에서 노출만 미루면 이탈만 늘어납니다. 길이를 늘리기 전에 끝까지 볼 이유가 화면에 있는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긴 편과 짧은 편은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국순당은 144초 풀버전과 16초 버전을 같은 날 함께 공개했습니다. 16초 버전도 158만 회를 넘겼습니다. 긴 편 하나만 만들고 나중에 잘라 쓰려 하면 대개 잘 잘리지 않습니다. 짧은 편에서 무엇을 남길지는 촬영 전에 정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제작사에 전달할 발주 문장 5개
우리 브랜드에 붙어 있는 부정적 인식을 덮지 말고 출발점으로 쓰는 안을 하나 포함해 주세요.
타깃을 나이로만 쓰지 말고 어떤 상황에 있는 사람인지로 다시 정의해 제안해 주세요.
하고 싶은 말을 자막으로 쓰지 말고 한 장면으로 옮기면 무엇이 되는지 콘티로 보여 주세요.
제품이 처음 등장하는 시점을 초 단위로 명시하고, 그 앞을 무엇으로 채울지 함께 적어 주세요.
긴 버전과 짧은 버전을 같은 기획에서 동시에 설계해 주세요.
발주 전에 내부에서 한 줄만 정해 오시면 상담이 빨라집니다. 우리 브랜드에 대해 고객이 하는 말 중 가장 뼈아픈 한마디. 그 한마디가 정해지면 그것을 덮을지 뒤집을지를 정할 수 있고, 뒤집기로 하면 첫 장면이 거의 자동으로 따라옵니다.
감을 잡으시라고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오래된 제조업: 설비가 옛날 방식이라던데요
소규모 업체: 직원이 몇 명 안 되던데 괜찮나요
지역 기업: 서울 업체가 아니어서 불안해요
셋 다 실제 상담에서 나오는 문장입니다. 오래된 설비는 오래 고쳐 온 손이 되고, 적은 인원은 담당자가 끝까지 붙는 구조가 됩니다. 사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이 무엇의 증거인지를 바꾸는 일입니다.
VDOLAB처럼 기획·촬영·편집을 한 팀에서 진행하는 제작사와 상담할 때는, 위의 뼈아픈 한마디와 지금 쓰고 있는 회사 소개 자료를 먼저 보내 보세요. 담당 PD가 그 한마디를 덮지 않고 첫 장면으로 바꾼 기획 방향과, 긴 버전·짧은 버전을 함께 쓰는 구성까지 정리해 드립니다.
제품을 설명하기 전에 사람과 시간을 먼저 보여준 장면들입니다. 두 컷 모두 제품이 화면에 없습니다. 참조영상링크
FAQ
백세주 '어른찬가'는 어떤 광고인가요?
2024년 10월 7일 국순당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된 약 2분 24초 브랜드필름입니다. 잔나비 최정훈과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이 함께 등장해 어른이 된 하루를 따라가는 구성이고, 2026년 8월 기준 약 899만 회 재생됐습니다. 같은 날 함께 올라온 16초 버전은 약 158만 회를 기록했습니다.
오래된 브랜드 이미지는 광고에서 감추는 게 낫지 않나요?
감추는 쪽이 더 위험한 경우가 많습니다. 고객이 이미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데 광고만 다른 말을 하면, 광고와 실물 사이의 간격이 그대로 불신이 됩니다. 백세주는 아저씨 술이라는 인식을 부정하는 대신 그 인식이 가리키는 대상을 다시 정의했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의미를 바꾸는 편이 안전합니다.
유명 캐릭터를 못 쓰면 이 방식은 쓸 수 없나요?
쓸 수 있습니다. 이 광고에서 캐릭터가 한 일은 시청자가 이미 갖고 있던 기억을 불러온 것뿐입니다. 같은 역할을 하는 재료는 회사 안에도 있습니다. 오래된 제품 사진, 초창기 사무실, 창업자가 쓰던 도구, 지역 사람이면 다 아는 장소 같은 것입니다. 라이선스 비용 없이 쓸 수 있고 우리 회사에만 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유리합니다.
제품을 늦게 보여주면 광고 효과가 떨어지지 않나요?
앞부분이 끝까지 볼 만할 때만 성립합니다. 이 광고는 제품이 나오기 전 1분 반을 시청자 자신의 하루로 채웠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앞이 제품 설명이나 회사 연혁이라면 노출 시점을 늦출수록 이탈이 늘어납니다. 노출 시점은 앞부분의 힘에 따라 정해야 하는 값이지, 규칙으로 정할 값이 아닙니다.
본문에 사용한 화면 이미지는 공개된 공식 광고 영상의 장면을 비평·분석 목적으로 인용한 것이며, 각 이미지에 출처와 타임코드를 함께 표기했습니다. 공개일·길이·재생 수와 제품 등장 시점은 공식 채널 영상을 직접 확인해 기록한 값이고, 호감도·매출 수치는 2025 유튜브 웍스 어워즈 코리아 그랑프리 선정 당시 공개된 자료 기준입니다. 저작권은 원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다음 결정
다음 브랜드 영상 회의에서 젊게 보이게 대신 한 칸을 채워 보세요. 우리에 대해 고객이 하는 말 중 가장 뼈아픈 한마디. 그 칸이 채워지면 회의의 질문이 바뀝니다. 어떻게 감출까가 아니라, 이 말을 누가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언제인가를 묻게 되기 때문입니다. 백세주가 찾은 답은 그 순간이 곧 새 고객이 생기는 지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Korea Media B2B Guide — https://koreamediab2bg.org/magazine/2026-08-29-baekseju-adult-anthem-good-ad-study (발행 2026-08-29)